여행2010. 1. 1. 01:26
 아침이 밝았다.


 새벽부터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먹고 나오니 밖은 아직 어둑어둑 하기도 하고, 간밤에 길이 얼어붙어서 여기저기 허옇게 서리가 내려 있었다. 아침 식사도 그 전에 여행다닐때 겪던것과는 달리 깔끔하고 양도 많이 나와서 좋았다. 사진은 아침에 정신없는데 뭘 찍어 그냥 꾸역꾸역 먹기만 바빴다.

 밥도 먹고 대충 씻고 아침 9시쯤이 되어서야 출발했다. 따뜻했던 호텔에서 나오는 춥기도 춥거니와 길 중간중간에 허옇게 살얼음이 얼어있어서 자전거 타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차들은 아침부터 뭘 그렇게 새차게 다니는지 칼바람에 얼굴이 따가웠다. 사실 그보다도 예상못했던 것은 점점 달릴수록 발이 시려워지는 것이었는데, 낮이 한참되어 11시쯤이 되어 해뜨기 전까지는(그래봐야 오후가 되면 해가 사라지지만..) 그 상태로 달려야만 했다. 게다가 왜인지 신발도 축축해져서 여러모로 출발이 쉽지 않았다.


 사진만 봐도 추워보인다. 10시쯤 다되어 찍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전히 추웠다.


 사진 한장 찍고, 다시 길을 재촉했다. 어제는 길에 포장이 잘 되어서 수월했는데, 오늘은 시작부터 조금 울퉁불퉁해서 승차감이 좋지 않았다.
 

 사실 이번 자전거 여행을 계획한 이유는 이런 경치를 보고 싶었던 이유가 가장 컸다. 전원적이고 길이 쭈욱 뻗은 곳을 좋아한다. 뭔 밭인지는 모르겠는데 꼭 녹차밭처럼 생긴 푸른밭이 길 양쪽으로 끝없이(는 오바고) 이어진다. 이틀째 온 곳이니까 되게 먼곳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런던에서 차로 한시간 남짓? 그정도 거리밖에는 안된다. 신나게 이틀을(사실은 5~6시간 쯤) 달려왔지만, 고작 차로는 한시간밖에 안되는 거리라는게 좀 씁쓰하다. 어찌됬건 그정도로 가까운 곳에 이렇게 한적한 곳이 있다는게 계속 놀라웠다.

 가는 길 곳곳에서 양이 풀뜯고 있기도 하고, 겨울이라 사람은 보기 힘들었지만 어쨋든 이리저리 시골풍경에 기분이 좋았다.


 중간에 곰탱이도 만나고,


 이번 여행의 가장 난코스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게 사실 폭이 1미터가 채 안되는데 이곳밖에는 길이 없었다. 어제 잠이 안와서 아이팟으로 뻘짓을 한 나머지 베터리도 다달아서 지도도 볼 수 없는지라 그저 A30길을 따라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이길은 좀 안전한 편이고 나중에는 너무 위험해서 옆에 나있는 풀밭을 따라 20분쯤 걷다가 다시 타고 또 걷다가 타고 심장이 쿵쾅거리더라.


 이건 중간에 거쳐간 작은 마을에서 찍은 사진인데, 자전거를 묶어놓는 시설로 보인다. 원래는 그냥 ㄷ자 형의 구조물이 3~4개쯤 박혀있는데 이 작은 마을 여기저기 이런 작은 자전거를 쇠로 만들어 놨더라. 괜찮은 아이디어 인 것 같아서 우선 찍어놨다.


 한참을 또 올랐다. 아니 그 미친놈은 왜 이게 쉽다고 해서 날 이렇게 고생 시키는지, 아니 무슨 언덕에 끝이 없고, 한참 오르다가 약간 내리막 또 한참 오르다가 약간 내리막. 평지였으면 5분이면 통과할 거리는 30분은 걸리도록 작은 경사면이 계속 되었다. 차타고 다닐때 전혀 오르막이라고 생각지도 못할 곳들이 자전거를 타게 되니 이건 무슨 거의 산이네 산.

 동행이 좀 뒤쳐저서 자전거고 뭐고 다 팽개치고 쪼꼬바를 먹으면서 두리번 거리다가 사진이나 몇장 찍었다. DSLR이라 무겁기만 하지 렌즈가 후져서 제대로 나오지도 않아 매우 약이 올랐다. 이 언덕은 그야말로 솔즈버리 하이킹 최대의 난코스였다. 작은 언덕이 끝없이 8~9개가 이어지는데 아마 자전거로 여행을 해본 사람은 알것이다. 차라리 내리막이 더 싫어..


 마음 같아서는 이 쪽 길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당연히 갈길이 아니니 사진만 찍엇다. 시골 같은 느낌이 나서 좋다.


 한참을 달렸다. 저기 언덕이 보이는데 저길 또 넘어가야 한단다. 이미 미친언덕때문에 다리는 개 만신창이가 된 상태인데 저기 언덕을 넘으란다. 아.. ㅅㅂ 장난..

 솔즈버리까지 20마일 정도 남은 상태였는데, 20마일이면 32km. 아 씨박 2시쯤 되었을 터, 사실 몸이 힘든것 보다 걱정거리는 따로 있었다. 영국의 겨울은 4시만 되면 해가 지기 시작해서 5시가 되면 완전히 어둑어둑 해진다. ebay로 주문한 라이트가 여행전까지 도착하지 않아서 라이트도 없이 출발한 상황. 저녁이 되면 너무 위험해서 라이딩은 포기해야 한다. 3시간동안 32km. 평지라면 무리 없는 거리지만 이게 또 오르막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저 언덕 증말 힘들었다.

 뭐 이미 돌아갈 수도 없고 호텔은 너무 비싸다. 가자.


 정말 더이상 오르막에서는 패달을 밟을 상태가 아니라 그냥 자전거를 옆에 달고 걸었다. 그러더니 다시 내리막과 오르막이 나오더라. 이제 오르막에선 무조건 내려서 끌고 올라가기. 근데 더 큰 문제는 길 포장상태였다. 포장상태가 심각하게 나빠지고 있었다. 아스팔트는 아스팔트인데 포장상태가 안좋으니까 작은 자갈들이 무수히 바닥에 깔려있었다. 얕은 내리막에서는 이제 패달을 안밟으면 자동적으로 굴러가지도 않을 정도의 상태였다.

 그 때.


 드디어 사건이 터졌다. 그야말로 터졌다. 꽤 탈만한 내리막이 있어서 활강(?)하면서 내려오는데 뒷바퀴가 뭔가 이상했다. 덜컹, 덜컹. 내리고 보니 이미 튜브가 완전히 터진 상태에 바람이 빠져서 바퀴 림과 바닥이 붙어버린 상태였다. 조대꾸나. 사진상으로는 구분이 안가지만 뒷바퀴가 완전히 맛이 갔다.

 대략 10마일 정도 남은 상황에서 이거 정말 난감했다. 2~3마일이면 뭐 어떻게 걸어라도 가보겠는데 시간은 이미 4시가 다 되어가고 15~6 km를 걸어간다는건 진짜 미친짓이었기 때문이다. 난감해서 우왕좌왕 하던 그때!

 천사가 내려오셨다. 

 지나가던 농부 아저씨가 '무슨 일 있어?' 하길래 '바퀴가 터졌어요' 했더니 아니 이 친절한 아저씨가 자기가 수리를 해주겠다는게 아닌가. 게다가 공구가 부족한 상황이어서 집에가서 차를 가지고 오겠다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곤 같이 있던 자식들에게 '어두워지기 전까지 들어와라~' 하고는 뒤돌아 가버리셨다.


 그리곤 정말 20분 뒤에 이 차를 타고 나타나셨다.


 기다리는 동안 할짓거리가 없어서 운동도 좀 하고.. (꿀벅지 인증)


 소 사진도 찍고, 이거 존나 무섭게 생긴 손데, 달려들까봐 좀 쫄았다. 투우에서나 보던 소인데 말도안되게 컷다. 저거 뭐 펜스 효과나 있겠어 싶기도 하고. ㅋㅋ


 그리고 이건 정말 뭔지 모르겠는데, 이게 밭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추수가 끝나면 만들어 놓는 그것 인것 같기도 하고 (명칭을 모름) 하여튼 신기해서 찍어놧다. 이것도 내 키보다 더 큰 우람한 물건이다.

 생각보다 작업이 쉽지 않았다. 구멍을 발견해서 때우고 다시 바람을 넣은다음에 자전거에 장착했더니. 바람이 다시 빠진다. 다시 바퀴를 때어내고 타이어를 빼고 튜브를 빼서 다른 구멍을 발견해서 다시 때우고 다시 바람을 넣은다음에 장착했더니. 또 바람이 빠진다.


 해는 지고, 안되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아저씨는 자기 집으로 날 데리고 갔다. 위엄있는 X5가 더러워 지든지 말든지 신경 안쓰시고 그냥 내 드러운 자전거를 쑤셔박으신 후 집으로 데려갔다. 물통에 물을 받고 터진 튜브를 넣으니까 구멍이 말도 안되게 한 10군데가 난거다. 그러니까 난 터진지도 모르고 한참을 달려서 자전거 바퀴가 개 걸래년되버린 상황인거지.

 하여튼 어떻게 어떻게 다 때우고 나니까 해는 완전히 내려앉아 어두워져 있었다. 그 때 아저씨는 다시 우리 자전거를 차에 태우고 솔즈버리까지 데려다 주었다. 아니 이건 뭐 진짜 천사인가요? 이 아저씨가 나한테 물어본건 단지 이름 밖에. 너무 고마워서 어떻게 보답을 할 길이 없더라. 주소만 물어보고 나중에 한국가면 한국 기념품이나 하나 보내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흔쾌히 알려주시고 '언제든 환영할께~'라는 접대용 멘트를 해주시더라.

 감사했다. :D


 윌리암 아저씨 라고 쓰고 천사 라고 읽는다.


 호스텔까지 데려다 주신 덕분에 대충 저녁을 때우고 잠을 잤다. 드디어 스톤헨지로 향했다. 스톤헨지는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자전거를 타도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비가 미친듯이 내려서 어쩔수 없이 투어버스를 선택했다.


 도착하니까 뭐 사람도 생각보다 많고, 양때 뛰놀고 날씨는 춥지 비는 와. 어휴. 그냥 대충 사진만 찍었다.


 바람 좀 봐, 게다가 렌즈에 빗방울을 하도 맞아서 흐릿흐릿 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왔으니까 기념은 냄겨야지.


 되게 크더라 생각보다. 멋지다. 라고 생각할뻔 했다 날씨만 좋았으면. 뭐 이건 춥고 비오고 스톤헨지고 나발이고 집생각만 나더라.


 마지막으로 스톤헨지의 원형을 그려논 벽화 앞에서 사진하나 더 찍고 돌아왔다. 얼마나 추운지 적나라하게 보인다.

 사실 이번 여행은 파리까지 자전거 타기 위한 시험 운전(?)에 불과했다. 겨우 이틀밖에 타지 않고 그나마도 첫날은 3~4시간 타고 해가 져서 엄청 힘들다고 말하긴 힘들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영국 시골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고, 지나가던 차들이 '이런 돌아이 새퀴들 이 겨울에 무슨 하이킹?' 하면서도 손도 흔들어 주고 기분이 좋았다.

 파리까지 가는 건 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2월중순쯤에 영국이나 슬슬 타고 돌아다녀볼까 한다. 자전거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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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nalogstyle